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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창고/책 읽어주는 곳

바다를 돈 내고 보러가진 않는다(모비딕 챕터1)

by winter-art 2023. 12. 31.

이스마엘은 습관적으로 바다에 나가는 편이지만 결코 돈을 내고 배를 타는 행위는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선장이나 요리사 등으로도 갈 수 없는 처지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자신은 명예로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것인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은 불명예스러운 존재로 본다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습관적으로 바다를 보는 이유

 

모비딕 전편 읽기

 

Now, when I say that I am in the habit of going to sea whenever I begin to grow hazy about the eyes, and begin to be over conscious of my lungs, I do not mean to have it inferred that  I ever go to sea as a passenger. For to go as a passenger you must needs have a purse, and a purse is but a rag unless you have something in it.

 

 

 

내가 눈이 흐릿해지거나 폐를 의식할 때 바다에 가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 배를 탄 승객으로서 바다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눈이 흐릿해진다는 것은 눈시울이 젖어있다는 것이나 노안이 왔다는 것이 아닌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몽롱해서 시야가 깜깜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폐를 의식한다는 것은 건강상 문제보다는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호흡이 가빠지거나 민감해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첫 장의 내용은 지속해서 주인공 이스마엘의 울분, 혹은 격앙된 감정, 화기를 다스리지 못해 분노가 차 오르는 상황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금전 문제가 또 거론됩니다. 

 

 

 

 

그는 팔자 좋게 크루즈 여행 따위나 하면서 바다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며, 배를 타려면 지갑이 있어야 하고 지갑에 돈이 차 있지 않으면 그것은 헝겊 조가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돈이 많이 없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그가 바다를 구경하는 것은 습관이 된 것을 보니 하루 이틀 된 울화가 아닌 것 같고요.

 

 

 

 명예를 혐오한다

 

Besides, passengers get sea-sick-grow quarrelsome-don't sleep of nights-do not enjoy themselves much, as a general thing;- no, I never go as a passenger; nor though I am something of a salt, do I ever go to sea as a Commodore, or a Captain, or a Cook. I abandon the glory and distinction of such offices to those who like them. For my part, I abominate all honorable respectable toils, trials, and tribulations of every kind whatsoever.

 

게다가 승객으로 배에 타면 뱃멀미에, 싸움에 밤잠도 설치는 등 제대로 즐길 수도 없습니다. 나는 절대 승객으로 탈 일은 없다며 비록 자신이 어떤 소금 같은 존재이긴 하다고 해서, 그것이 돈이 없거나 돈을 안 쓰는 짠돌이란 말인가 했더니 그런 말은 아닌 것 같고 미약한 존재라는 의미 같습니다.

 

 

 

약간의 존재라고 해도 될 것 같고요. 그러면서 자신이 배에 제독이나 선장 혹은 요리사로라도 탈 일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그런 영광과 명예와는 구별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혹은 그런 영광과 명예로운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맡긴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면서 자신의 파트는 모든 명예롭고 수고롭고 고난이나 시련을 싫어하는 것을 뛰어넘어 혐오한다고 합니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냄새가 풍기죠?

 

 

 명예를 혐오한다

 

It is quiter as much as I can do to take care of myself, without taking care of ships, barques, brings, schooners, and what not. And as for going as cook, - though I confess there is considerable glory in that, a cook being a sort of officer on ship-board- yet, somehow, I never fancied broiling fowls;- though once broiled, judiciously buttered, and judgmatically salted and peppered, there is no one who will speak more respectfully, not to say reverentially, of a broiled fowl than I will. It is out of the idolatrous dotings of the old Egyptians upon broiled ibis and roasted river horse, that you see the mummies of those creatures in their huge bake-houses the pyramids.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배와 관련한 모든 것과 거리를 두는 일이라고 합니다. 내 한 몸 돌보는 것조차 버겁다는 의미겠죠.

 

 

 

그리고 배의 요리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한번도 가금류를 요리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일까요? 비록 한 번은 고기를 굽고 버터를 바르고 소금에 후추를 뿌리는 일은 했었지만 자신만큼 가금류에 대해 정중하게 말할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정중하게 대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가금류를 굽는 요리는 이집트의 우상숭배 차원, 그러면서 따오기를 굽는 의식에서 비롯된 거라고 하는데요. 그러면서 생물들의 미라가 거대한 빵집 피라미드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요. 정말로 신박한 발상이네요.

 

 

 

  피라미드 빵집

 

 

 

 

 

고대 벽화 속 새 가면이 따오기였군요. 따오기는 이집트 종교에서 달의 신, 계산의 신, 학문의 신, 그리고 글쓰기의 신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의 발명가, 언어 창조자, 신들의 필경사 및 조력가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신이었네요.

 

아무튼, 이스마엘은 가금류를 정성스럽게 굽고 버터를 바르고 등등 일련의 요리 행위가 이집트 종교에서 그들이 신성시하는 따오기와 말 등을 미라로 만들어 피라미드에 보관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가 봅니다. 너무 절묘하네요. 아니면 자신은 피라미드 속 미라를 만들 듯 요리를 임할 때 그렇게 경건하고 진지하게 다룬다는 의미인 것일까요? 이 오독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나중에 김석희 번역의 모비딕을 읽고 이불 킥할 일 여러 번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번역보다는 고찰에 의미를 두며 정보 습득을 겸한 것이니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책과 상관없이 내용을 덧붙이자면 고대 이집트에서 동물들을 미라로 만든 것은 종교적 믿음 및 의식들과 깊은 연관이 있고 이집트인들이 특정 신들에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사후 세계에서 자신들 좀 예쁘게 봐달라는 측면에서 그리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집트가 사후 세계에 관심이 유별난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의 제사 문화도 이집트 영향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쪽에서 조상님이 안 건너왔단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편으로 따오기가 아닌 방독면을 쓰고 지구에 나타난 외계인을 보고 숭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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