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형이나 환경에서 같은 종이 생장한다.
우리가 가을 무렵에 흔히 볼 수 있는 코스모스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피어있다. 꽃은 같지만 그들에게 개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얗게 피기도 하고 붉게 피기도 하고 키가 작거나 크거나 빨리 시들거나 늦게 피거나 등, 미묘한 개성을 지닌다.
어떤 생물체 입장에선 인간도 그러하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이다. 그러니까 인간이란 종은 하나이고 운명공동체이다.
그건 그렇고 인간 입장에서는 개성을 존중해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서쪽에서 핀 코스모스와 남쪽에서 핀 코스모스는 엄연히 다를 거다. 타향에서 핀 코스모스도 같지만 다른 특색이 있을 거다.
그러나 어쨌든 비슷한 환경에서는 비슷한 생명체가 자라난다.
나를 코스모스라고 가정했을 때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분명 같은 세계에 존재할 거다. 나보다 먼저 살다가기도 하고 나중에 태어나기도 하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산재해 있을 확률이 높다. 다만 식물처럼 산발적으로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기에, 비교적 적은 확률로 똑같은 모습의 개체가 생성되는 것뿐이다.
혹자들은 이를 도플갱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플갱어는 인간 세상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나와 닮은 사람은 만날 수 있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거의 드문 일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일은 발생한다. 굳이 쌍둥이로 태어나지 않아도 지구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는 일이 꼭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이 비슷하기까지하다.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똑같이 생긴 여인이 비슷한 선상에서 비슷한 생을 살다 한 여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다른 여인이 알수없는 슬픔에 빠져 고통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무딘 감성이 그런 것까지 알아챌 수는 없겠지만 어쩌다 알 수 없는 슬픈 감정이 밀려온다면 어딘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아프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코스모스 얘기로 돌아가서, 코스모스는 추운 계절이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시든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흔적 조차도 남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말이다. 코스모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다른 식물이 대체로 자신들의 전성기를 지나면 그렇게 동시에 시들어 버린다.
나와 같이 생긴 사람, 나와 똑같은 부류도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라이프 주기를 만들면서 희노애락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쪽이 잘 되면 다른 한쪽이 안 되는 따위가 아니고 비슷한 운명 선상에 놓인다는 거다.
나는 기억의 왜곡을 타인에 의한 기억 착오라고 해석하고 싶다.
누군가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 공유한 기억이 나를 만나 기억을 들먹였을 때 나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나거나 기억을 못하는 것처럼 헷갈려 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상대방만이 또렷하게 기억한 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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