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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book/성경 자의적 해석

요단강이 황천길 개념이 된 이유 여호수아 3장

by winter-art 2025. 3. 17.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 3장입니다. 1절에서부터 6절까지는 관련한 내용으로 언약궤를 먼저 운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에서 상여를 매고 가는 모습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한국에선 황천길 개념이 된 걸까요?

 

 

언약궤의 의미와 역할

1. Then Joshua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they set out from Shittim. And they came to the Jordan, he and all the people of Israel, and lodged there before they passed over. 2 At the end of three days the officers went through the camp 3 and commanded the people, "As soon as you see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your God being carried by the Levitical priests, then you shall set out from your place and follow it. 4 Yet there shall be a distance between you and it, about 2, 000 cubits in length. Do not come near it,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way you shall go, for you have not passed this way before." 5 Then Joshua said to the people, "Consecrate yourselves, for tomorrow the Lord will do wonders among you." 6 ANd Joshua said to the priests, "Take up the ark of the covenant and pass on before the people." So they took up the ark of the covenant and went before the people.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 앞서 레위 제사장들을 시켜 먼저 언약궤를 운반하라고 시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죠. 이렇게 한 이유는 어떤 통치의 신성화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나타내면서 신성시하는 것이겠죠.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의미도 있겠고요. 모세는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면서 가나안 약속을 시작했다면 여호수아는 언약궤로 요단강을 건너면서 가나안 정복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 구절에서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을 정결하게 입고 레위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들고 먼저 요단강을 건너라고 하는 모습이 마치 상여를 들고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언약궤와 상여는 막대기를 끼워 엄숙하게 이동하는 방식이 동일합니다.

 

 

 

장례식장에서의 엄숙한 분위기로 상여를 메고 가는 것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 강을 건너는 모습이 굉장히 흡사해 보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뒤따르며 이동하는 모습도 장례 행렬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출애굽 세대의 끝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에서 요단강은 경계를 넘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을 건너는 것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의식과 비슷하게 여겨졌는데요. 성경에서 요단강이라면 한국에는 삼도천이 있던 가요? 그런데 둘 다 어떤 경건한 의식이긴 했지만 왜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의식이 한국 기독교에서는 삼도천 같은 죽음의 강으로 해석된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요단강이 황천길이 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요단강이 어쩌다 황천길 개념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서 요단강은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죽음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요단강을 건넌다는 표현이 황천길로 간다는 의미로 굳어진 것일까요? 한국 전통에는 사람이 죽으면 강을 건너 저승으로 간다는 삼도천 개념이 있습니다. 삼도천은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강인데요. 한국인에게 강을 건넌다는 표현이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이미지가 익숙하게 박혀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찬송가에는 요단강 건너편에 천국이 있다고 하는 표현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황천길과 연결된 것 같습니다. 실제 구약에서 천국 관련 단어는 1도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길을 지나가다라는 의미이지 절대로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번역 오류였을까요? 그렇다기보다는 찬송가와 한국적 해석이 의미를 변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오류를 고치기도 버거운 것이 기독교인이며 일반인 할 것 없이 요단강 건너는 것은 죽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굳이 좋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성경에서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한국 정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리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는 성물 언약궤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죽은 자의 영혼을 모시는 성물 상여는 혼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서 저승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상여를 메고 가는 문화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미라를 운반할 때 이러한 방식으로 메고 이동하는데요. 아무래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당연히 한국도 영향을 받아 삼국시대부터 귀족의 장례식에 그리 하고 다녔다고 하고요. 게다가 실제로 언약궤는 이집트의 신성한 가마 문화와 매우 유사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집트에서 왕족으로 산 모세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모세는 유목민적 삶을 살던 노예 이스라엘 민족에게 문명적 체계를 전수한 인물이었던 것이죠.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새롭게 설계한 개혁자니 이스라엘 민족 입장에서는 신적인 존재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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