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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창고

한국사 통일 신라의 불교 특징

by winter-art 2023. 2. 8.

통일 신라 시대 불교 특징으로 의상의 화엄과 원효의 화쟁 사상이 대표적이다. 의상은 전제군주제 확립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교종 불교에 관하여

 

통일 신라는 중대와 하대로 불교를 구별한다. 중대는 교종 오교, 하대는 선종 부로 교종의 교는 가르칠 교를 의미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 교종은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그의 가르침은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으로 남아있다. 경전의 가르침을 깨닫는 성향의 불교를 교종 불교라고 한다.

 

 

 

 

  보덕의 열반종이 탄생한 배경

 

 

 

교종 5교는 보덕의 열반종이 있고 자장의 계율종이 있다. 이는 통일 이전에 이미 있던 종파이다. 보덕의 열반종이 탄생한 배경은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기존 귀족 세력이 불교계와 결탁되어 있어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도교를 인위적으로 장려하면서 보덕이 백제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 도교에 맞서기 위해 열반종이란 새로운 불교 종파가 생겨났다. 통일 이후에는 원효의 법성종, 의상의 화엄종, 진표의 법상종이 대표적이다. 

 

 통일 신라 중대 불교 특징

 

옛 신라 지역은 화엄종이 유행한 반면 옛 백제 지역은 진표의 법상종이 크게 유행했다. 당시 백제 유민 의식과 결합하면서 진표의 법상종이 유행한 것으로 본다. 통일 신라 중대의 불교 특징으로 승려가 등장한다. 원효, 의상, 혜초, 원측이란 4명의 승려가 대표적이다. 

 

 통일 신라를 대표하던 승려들에 관하여

 

혜초는 인도를 다녀온 뒤 왕오천축국전이란 기행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세계 3대 인도 기행문으로 평가 받는다. 원측은 유식불교. 원측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당나라에 가서 당나라 제일 유명한 현장법사 제자이다. 그중 가장 뛰어난 제자이나 신라 불교에서는 업적이 없고 당나라 불교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로 알려진다. 

 

 

원효와 의상은 동시대 인물로 원효가 의상보다 8살이 더 많다. 당시 고려나 통일 신라 승려는 최고 지식층이었고 대부분 진골이나 6두품 출신이었다. 원효나 의상도 불교의 성지 인도로 가고 싶었으나 당나라로 가서 구법의 꿈을 가진다. 당시 원효는 38세 의상은 30세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고구려 군사에게 체포되어 압송당했다. 두 번째는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하고 노숙을 하였다. 여기서 그 유명한 해골물 사건이 생긴다. 해골물을 마신 사실을 안 두 승려는 구토를 하였고 여기서 원효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부처의 말씀이 모든 게 내 마음속에 있구나였고 의상은 한 시간을 넘게 토를 하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배를 타고 간다. 의상은 8년 동안 지엄이란 유명한 고승 밑에서 화엄학을 배우고 돌아온다. 

 

 

 의상의 화엄학

 

당나라에 있던 의상은 당나라가 나당 전쟁 바로 직전임을 알고 당나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해 급히 귀국한다. 돌아온 의상은 화엄사상을 정립하는데 해동화엄종의 시조가 바로 의상이다. 원효와 의상이 다른 점 중 의상은 진골 귀족 출신이고 원효는 6두품 출신으로 신분 차이가 난다. 둘은 친구 사이였지만 원효는 글을 잘 쓰고 의상은 말을 잘했다. 원효는 명전을 30여권이나 저술하였고 일본이나 중국 불교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높다. 그러나 의상이 남긴 글은 딱 하나 화엄일승법계도, 그것도 182자로 쓰인 게 전부다.

 

  의상 화엄종의 핵심 교리는 일즉다체

 

화엄종의 핵심 교리는 일즉다체 혹은 다즉일체 즉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하나란 의미다. 여기서 하나는 문무왕이나 신문왕 등 전제군주 였으며 이는 전제군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화합의 논리가 담겨있다. 그래서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가 전제왕권을 뒷받침했다는 평을 받는다. 의상은 영주 부석사 등 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의상이 관음신앙이라면 원효는 아미타 신앙으로 비교된다. 정확히는 의상은 원효가 전한 아미타 신앙과 더불어 현세적인 관음신앙을 전파했다. 의상의 관음신앙은 관세음보살을 신봉하는 신앙이다. 관세음보살은 해탈할 수 있는 데도 자신의 해탈을 미루고 한 명이라도 더 중생을 구하기 위해 힘쓴 보살이라고 한다.

 

 

 

의상에 관한 이야기로, 문무왕이 새로운 도성을 쌓으려고 하자 의상이 눈에 보이는 도성을 쌓을 게 아니라 백성들에게 민심의 성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원효의 화쟁 사상에 관하여

 

 

불교에서 원효가 의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수준높은 불교 저작을 남긴 이유가 크다. 원효는 일심사상에 바탕을 둔 화쟁 사상을 강조했는데 통일기 무렵 신라 불교 종파는 직관학파와 중간학파 사이의 대립이 심했다. 원효는 한 차원 더 높은 곳에서 이들을 해소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일심 즉 화쟁사상이다. 그에 대한 저작이 십문화쟁론이다. 

 

아미타 신앙이란 아미타 부처가 있는 곳이 극락 세계란 곳으로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누구나 나미아미타불을 열심히 염하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이것은 왕실의 불교 귀족의 불교를 대중 종교로 확산하는 데 기여한 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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