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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창고

한국의 역사 조선의 관리 등용제도에 관하여

by winter-art 2022. 12. 7.

철저한 계급 사회이던 조선 시대에서 관리가 되는 길은 나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이고 명예로운 경로는 과거 시험을 통하는 방법이었고 이 방법을 거치지 않으면 고위 관리가 되는 길은 어렵습니다. 고려시대보다 음서나 문음 제도가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천거 제도도 있었습니다.

 

 

조선 관리 등용제도의 모든 것

 

 

조선의 관리 등용제도를 공부하기 앞서 조선의 통치체제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보다 잘 정리된 다른 포스팅도 많아서 적극 추천하는 포스팅은 아니지만 대충 훑어 읽기는 괜찮습니다. 개인 공부용으로 요약해 둔 거라서요. 시험용도 아니고 그냥 쓱 읽기에 좋은 수준입니다.

 

 

한국사 조선의 통치체제 보기

https://bit.ly/3P6XAxG

 

한국사 조선의 통치체제

조선의 중앙정치기구 핵심은 의정부와 육조체제. 의정부는 재상합의제, 정승들이 국정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의정부. 의정부 밑에 6조 이호예병형공 조가 업무 분담. 조선의 통치 조직에 관

goodinj.tistory.com

 

조선의 천거제도 및 취재에 관하여

 

위에 조선의 관리 등용 제도를 서술하면서 천거 제도를 언급했는데요. 천거 제도는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니고 현직 관리나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으면 그에 따라 현직에서 2~4단계 정도 점핑해서 승진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벼슬이 없는 상태에서 천거를 받는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물었다고 합니다. 또한, 취재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취재는 벼슬이 낮은 하급 관리가 될 때 간단한 시험을 거치는 일종의 요식 행위 같은 걸로 보입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조선 시대는 과거 시험이 벼슬길에 오르는 가장 완벽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무 양반 제도가 있던 조선 시대

 

 

조선시대는 비교적 문무를 겸비한 엘리트를 중시한 사회였던 걸로 보입니다. 고려 시대 한문학을 테스트한 제술업과 유교 교육을 테스트한 명경업이 있었다면 조선은 문과와 무과 그리고 기술관을 뽑는 잡과가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는 마지막 왕 공양왕 때 무과 시험이 딱 한 번 있었으나 조선은 형식적으로는 문과와 무과를 동등하게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대우가 동등했다고 보긴 어렵고요. 문과는 예비 시험을 따로 치렀는데요. 생원과와 진사과 합해서 생진과를 먼저 본 다음 문과 시험을 봤습니다. 여기서 생원과는 유교 경전 시험에 해당하고 진사과는 한문학 시험을 의미합니다. 또한, 고려 시대에는 제술업을 명경업보다 높게 뒀지만 조선 시대에는 둘 다 동급으로 비중을 두었습니다. 

 

조선시대 시험 응시 자격과 실시 시기

 

조선 시대 과거 응시 자격은 원칙적으로는 양인이상이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문과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한 제한이 있었습니다. 탐관오리로 찍힌 자손이나 반역자, 재가한 여자의 자손이나 서얼 등은 응시를 못했습니다. 대과 뿐 아니라 소과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시험 실시시기는 일반적으로 식년시라고 해서 3년에 한 번씩 정기 과거 시험을 보았습니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송나라 이래로 명.청 시대까지 3년에 한 번씩 정기 시험을 보았는데 이를 식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은 식년시보다 별시가 더 많이 실시되었습니다. 별시로는 증광시와 알성시가 있습니다.

 

증광시는 국가의 큰 경사가 있을 때 특별 과거 시험을 치렀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가 세자로 책봉 된 경우 같을 때 말입니다. 그리고 알성시는 성균관을 배알 한다고 해서 공자와 공자 제자들이 사당을 모시는 곳인 문묘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이곳에서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데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특별 과거 시험을 보는 것으로 이게 바로 성균관 알성시입니다. 일반적으로 소과를 합격하면 성균관 유생이 되며 그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거 시험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기회, 즉 출세 길이 열린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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