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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잼 삼국유사 스토리 1편

by winter-art 2021. 8. 23.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구전된 민담, 설화, 신화, 실화 등을 바탕으로 개인 의식도 넣고 등등해서 엮은 역사서이다.

 

괴이한 것이 아니고 기이하다. 복희의 팔괘. 낙수에서 글이 나온 것은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등에 글이 씌어진 신귀가 낙수에서 나왔는데 글을 낙서라고 한다. 우임금은 글을 바탕으로 홍범구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태호 복희가 여기서 왜 나와?

 

 

미천한 지식으로 복희가 중국 전설 속 최초 왕인 줄 알았는데 삼국유사에 계보가 있다.

아무튼, 황하에서 팔괘가 나오고 낙수에서 글이 나오면서 성인이 일어났다. 무지개가 신의 어머니를 둘러싸 복희를 낳았고 신농(중국 고대의 제왕, 농기구와 오곡 파종법 개발 화덕을 받들었으므로 염제로 불렸다) 어머니인 용이 여등과 관계를 맺어 염제를 낳았으며 소호씨의 어머니인 황아가 궁상이라는 들판에서 노니는데 자신을 백제의 아들이라 일컫는 신동이 있어 그와 교합하여 소호를 낳았고 간적은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으며 강원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기를 낳았고 요의 어머니는 임신한 14개월만에 요임금을 낳았으며 용과 못에서 교합하여 패공을 낳았다. 

 

2000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조양의 땅이라는 말로서 조선이라는 )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바로 임금과 같은 시기다.

 

 

하나님의 서자 환웅과 조선

 

 

옛날 하나님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아버지가 뜻을 알고는 어차피 하늘에서는 천대 받는 처지라,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만하여 천부인 신의 위력과 영험한 힘의 표상이 되는 물건 개를 주어 내려보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전이라 하고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하였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인간 세상의 360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다. 당시 부족과 호랑이 부족이 같이 살았는데 환웅족에게 시집을 보내고 싶어 안달하였다. 환웅이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100일동안 햇빛도 보지 않고 먹고 있으면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호랑이 여자는 며칠 하다가 포기하였고 여자는 이행하여 환웅의 처가 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단군왕검은 정사년에 서경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1500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던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살면서 산신이 되었는데 나이는 1908세였다.

 

왕검에 도읍을 정한 위만

 

연나라가 조선을 침략해 관리를 두고 성을 쌓았다. 진나라는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요동의 변방에 예속시켰다. 그러자 한나라가 일어났고 멀어서 지키기 어려운 탓에 다시 요동의 요새를 고쳐 짓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를 삼아 연나라에 예속시켰다. 연나라의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들어가자 연나라 사람 위만은 망명하면서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빈터인 상하장의 변방 요새에 머물렀다. 그리고 차츰 진번 조선의 만이,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를 설득하여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을 정했다. 위만은 주변의 작은 고을들을 침략하며 저변을 확대했다. 위만은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이후 손자 우거에 이르렀다.

 

b.c 109 한나라 사신 섭하가 우거를 타일렀지만 끝내 받들지 않았다. 섭하는 국경까지 가서 패수에 이르러 수레를 몰던 자를 시켜 자기를 호성하던 조선의 비왕 장을 죽였다.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여 불시에 습격하여 그를 죽였다. 그리고 조선은 왕검을 치려고 군사 7000명을 거느리고 왕검성에 도착하였다. 누선은 패배하였다. 차례의 싸움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4군을 두었다.

 

 

마한

위만이 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왕 준은 바다를 건너 남쪽 한나라 땅에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견훤이 태조에게 글을 올려 말하였다.

옛날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거세가 일어나자, 이에 백제가 익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최치원은 말했다. 마한은 고구려요 진한은 신라이다. 

 

낙랑궁

전한 처음으로 낙랑군을 두었는데 응소는 옛날 조선국. 신라가 말하길 북쪽에는 말갈이 있고 남쪽에는 왜가 있고 서쪽에는 백제가 있어 나라의 폐해가 된다.

 

가야

자주색 가닥이 하늘에서 내려와 둥근 여섯 개를 내렸는데 다섯 개는 각기 읍으로 돌아가고 하나가 성에 있게 되었다. 하나는 수로왕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 개는 각기 다석 가야의 군주가 되었으니 금관을 다섯의 숫자에 넣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북부여

임술년 4 8일에 천제가 오룡거를 타고 흘승골성으로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일컬으며 국호를 북부여라 하였다.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 하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 했는데, 해를 씨로 삼았다.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주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라 했으니,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동부여

북부여왕 해부루의 재상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내려와 이렇게말했다. 장차 자손에게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것이니 너는 다른 데로 피해 가라. 동해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져 왕도로 삼기에 적당하다. 그곳에 국호를 동부여라 했다.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날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잇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타고 가던 말이 연못에(백두산 천지) 이르러 돌을 마주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돌을 옮기자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아이를 거두어 이름을 금와라고 하였다. 그가 성장하자 태자로 삼았다.

 

고구려

졸본부여다. 성이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물의신 하백의 유화입니다. 동생들과 놀러 나왔을 남자가 나타나 자신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백두산 아래 압록강가에 있는 집으로 유혹하여 사통하고는 저를 버리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부루와 주몽은 이복형제)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간 것을 꾸짖어 이곳으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금와는 괴이하게 여겨 유화를 방안에 몰래 가두었더니 햇빛이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가 몸을 피하자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이로 인해 임신하여 알을 하나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었다. 돼지에게 알을 줘도 먹지 않았고 길에다 버렸으나 , 피해갔고 들판에 버리니 새나 짐승이 알을 덮어 주었다. 왕은 그것을 깨뜨리려 했지만 깨지지 않아서 유화에게 주었다. 유화가 천으로 알을 부드럽게 감싸 따뜻한 곳에 두자 어린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겉모습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주몽이야기

 

 

나이 겨우 일곱에 용모와 재략이 비범했으며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아 맞추었다.(유목 생활 단서) 나라의 풍속에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금와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다. 주몽을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 오이 사람과 벗을 삼아 떠나 엄수에 이르러 물에게 알려 말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자 하백의 손자다.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다음 다리를 풀었으므로 뒤쫓던 기병은 건너지 못했다. 주몽은 졸본주에 이르러 마침내 도읍을 정했고 미처 궁궐을 짓지 못하고 동북쪽 비류수가에 초가집을 지어 살면서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이로 인해 고씨를 성으로 삼았다. 본래 성이 해씨였는데 고씨로 옮긴 . 주몽의 나이 12. 한나라 효원제 건소 2 갑신녀에 즉위하여 왕이라고 일컬었다. 

 

변한과 백제

신라 시조 혁거세가 자리에 오른 19 임오년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바쳐 투항. 온조가 일어난 것은 홍가 4 갑진년bc17 혁거세와 동명왕의 세대보다 40 뒤의 일이 된다.

 

 

진한

진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자 마한이 동쪽 경계의 땅을 떼어주고 서로 불러 무리를 이루었는데 진나라 말과 유사하여 간혹 진한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조 혁거세왕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이씨, 정씨, 손씨, 최씨,배씨,설씨, 여섯부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은 군주가 없어서 고민을 하던 끝에 높은 곳에 올라가 남쪽을 보니 양산 아래 솔밭 아래 번갯불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우고 백마 마리가 꿇어앉아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그곳으로 갔더니 자주색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뜨려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모습과 거동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동천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빛이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아졌다. 그래서 혁거세왕(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 위호는 거슬한이라고 하였다.

 

 

천자 혁거세가 내려왔으니 덕이 있는 왕후를 찾아 짝을 맺어줄 생각을 하였다. 사량리 알영정 우물(알은 사물의 핵심이나 근원을 말하며 씨의 대칭어로 여성에게만 쓰였다고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용이 나타나 죽었는데 배를 갈라 얻었다고도 한다) 그녀의 얼굴과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술이 닭부리와 같았다. 그래서 월성 북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부리가 떨어져 나갔으므로 시내의 이름을 발천이라 하였다.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아이를 받아 길렀다. 남자아이는 알에서 태어났는데 알이 박처럼 생겼다. 향인들이 바가지를 박이라 했기 때문에 성을 박씨로 하였다.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성인이 나이 13세가 되는 오봉원년 갑자에 남자 아이를 왕으로 세우고 여자아이를 왕후로 세웠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 혹은 사로라 하였다.

 

처음에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으므로 계림국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 김알지를 얻자 숲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고쳐 계림이라 하였다고 한다. 후세에 이르러 국호가 신라로 정해졌다. 박혁거세는 61년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7 시신이 땅에 흩어져 떨어졌고, 왕후도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한곳에 장사를 지내려 하자 뱀이 쫓아다니며 이를 방해하였다. 그래서 머리와 사지를 제각기 장사지내 오릉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사릉이라고도 한다. 태자 남해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2 남해왕

남해거서간은 차차웅(무당을 말하는 방언)이라고도 한다. 혹은 이사금(이빨자국) 혹은 잇금. 이는 존장을 일컫는 . 오직 왕만을 차차웅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혁거세이고 어머니는 알영부인이다. 비는 운제부인.

전한 평제 원시 4(4) 갑자년에 즉위하여 21년동안 다스리고 지황4(24) 갑신년에 죽으니 왕이 바로 삼황의 첫째라고 한다.(삼황 혁거세왕, 노례왕, 남해왕 일컬음)

 

 

3 노례왕

박노례 이질금이 처음에 매부 탈해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탈해가 말했다. 무릇 덕이 있 자는 치아가 많다고 하니 마땅히 잇금으로 시험해 봅시다. 이에 떡을 물러 시험해 보니 왕의 잇금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즉위하였다. 이런 연유로 왕을 잇금이라고 하였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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