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이혼 대신 남편에게 독극물을 먹여 죽게 했던 줄리아 토파나의 실화 스토리는 17세기에 일었났던 일이다. 줄리아 토파나는 화장품이란 명목으로, 그것도 연고 타입의 제형으로 뺨을 붉게 표현하는 블러셔 제품을 만들거나 병 속의 분말을 화장품으로 속이고 독약을 팔았다.
줄리아 토파나의 화장품 제조 스토리
줄리아 토파나의 독극물 제조 역사는 그녀의 엄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녀의 엄마 토파니아 다다모는 자신의 남편인 프란치스코 다다모를 독극물로 살해했다. 엄마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줄리아는 13살 때 향수와 화장품을 만드는 약제사로 일했다. 그녀의 커리어는 1659년 7월 로마에서 처형되기 전까지 지속된다. 자그만치 600명이 넘는 남자가 그녀가 만든 제품으로 인해 사망하자, 사안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줄리아의 딸 지롤라마 스페라를 포함한 직원 3명도 함께 처형하여 싹을 없앴다.
독의 여왕인지 화장품 제조업자인지 분분한 의견
독의 여왕으로 불린 줄리아 토파나를 화장품 제조업자로 봐야할지 독약 제조업자로 봐야할지 현재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줄리아 토파나의 엄마는 독을 이용해 남편을 죽였지만 딸에게는 그것으로 화장품 만드는 비법을 전수했다. 다만 치사량을 쓰지 못하게 권고하였고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전했을 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만든 독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시대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혼이 허락되지 않은 시기에 필요했던 제품
그녀가 처음 제품을 만들었을 때 작고 예쁜 병에 성직자 니콜라스의 경건한 이미지를 붙여 종교적 치유 오일로 포장이 되어있었다. 일부는 이를 위장이라고도 하지만 과연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제품을 그렇게 예쁘고 그럴듯한 용기에 담아 팔 수 있을까 싶기 때문에 위장이 아닌 포장이라고 표현하겠다. 하긴 악마는 죽기 직전까지 가장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수요가 맞아 떨어졌다. 17세기 이혼이 허락되지 않은 시기에, 더군다나 남녀 불균형이 심해 매 맞는 아내들이 견디기 힘들었다면 죽이고 싶은 건 당연했다. 그러나 어떻게 죽인담? 물론 학대를 당하지 않아도, 늙은 남편이나 싫증난 남편과 헤어지는 방법은 남편을 죽이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입소문으로 들키지 않는 묘약이 있다고들 하니까.
치명적인 뷰티 시크릿
고대 시대 이야기를 보면 독약으로 사람을 죽인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궁중 잔혹사도 그렇고 걸러지지 않은 치명적인 독초가 만발하였으니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거다.
줄리아 토파나는 일종의 치명적인 뷰티 시크릿을 남편을 독살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전수했다. 그녀는 직접 여성들을 찾아가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남편을 유혹하는 수단인 동시에 남편에게 먹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방법을 알려주자 소문은 금방 퍼졌다.
주성분은 비소
줄리아 토파나가 만든 아쿠아 토파나는 비소가 주성분이었다. 비소는 위장병을 가장한 복통으로 죽을 수 있기에 완전범죄가 가능했다. 늙은 남편과 결혼한 젊은 아내를 비롯하여 돈 많은 남편과 빨리 작별하고 싶을 때 여성들은 망설임없이 아쿠아 토파나로 남편을 유혹했다. 조금 소름끼치긴 하지만 줄리아 토파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였고 뷰티업계의 잔다르크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학대받는 여자들을 해방시키는 데 막대한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록 처형은 당했지만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순교나 다름없게 여겨지고 있다. 정작 줄리아 토파나하고는 직.간접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남자만 죽어나갔다.
게다가 반드시 여성에게 불이익을 준 남자들만 죽어나갔을까? 오로지 막대한 유산이 목적이어서 남편에게 독약을 먹였을 가능성도 크다. 아마 점차적으로 그런 이유로 아쿠아 토파나를 구입한 사람들이 늘었을 거다.
상속 분말이란 별칭 그리고 줄리아의 최후
아쿠아 토파나는 소위 돈있는 부인들 사이에서는 상속 분말로 소문이 돌았다. 그 옛날 남자들의 명이 왜 그렇게 짧은가 했더니 어쩌면 돈 잘 버는 남성들이 이러한 이유로 살해를 당해서 였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돈 많은 부르주아가 얼마나 많다고 아쿠아 토파나로 죽은 남성들이 600명에 달한다고 하니,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가히 엄청난 일을 이탈리아 여성들이 저질렀구나 싶다.
공교롭게도 줄리아의 만행은 그녀의 고객으로 인해 들통이 났다. 분말 형태의 독극물을 남편 수프에 타 놓고 정작 남편이 먹으려 하자 마음이 약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고는 자백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여 줄리아 토파나는 40번째 생일을 앞두고 딸과 함께 생을 달리했지만 아직도 마녀 사냥이라느니, 살인범이다, 아니다 단지 장사치였을 뿐이었다는 의견 등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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