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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창고/책 읽어주는 곳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루덴스

by winter-art 2021. 10. 31.

요한 하위징아 지음, 호모루덴스, 이종인 옮김, 호모루덴스, 연암서가, 2019 개정판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감히 호모 사피엔스(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인류는 합리주의와 순수 낙관론을 숭상했던 18세기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인류를 호모 파베르(물건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을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21.

 

 

학자들은 놀이에 관해 모방 본능을 만족시키기 혹은 긴장을 해소시키기 등으로 해석하고  내적 충동 혹은 남을 지배하고 경쟁하려는 욕망 등으로 해석하고 충동을 발산시키는 배출구 역할을 하는 발산으로 정의했다. 일방적인 행위로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는 것, 소망 충족, 개인적 가치의 느낌을 유지시켜주는 허구적 개념 등으로 보는 해석들도 있는데 놀이에 음악을 대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놀이이자 재미 그러니까 인간이 추구하는 유희가 아닐까?

 

놀이는 진지함의 정반대 개념이다

 

 

 

놀이는 일단 시작되면 적절한 순간에 종료된다. 놀이는 어느 정도 벌어지다가 스스로 종료한다.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운동, 변화, 교대, 연결, 결합, 분리의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시간의 제약에 관련하여 놀이는 더욱 기이한 특징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놀이는 문화현상이라는 고정된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일단 놀아버리면, 놀이는 정신이 새로 발견한 창조물, 기억에 의해 보유되는 보물로서 유지된다. 그것은 뒤로 물려져 전통이 된다. 46~47.

 

 

시간의 제약보다 더 놀라운 것은 공간의 제약이다. 모든 놀이는 운동성을 갖고 있고, 사전에 그 놀이가 벌어지는 공간을 따로 마련한다. 놀이와 의례에 형태적인 차이가 없는 것처럼, 신성한 장소와 놀이터를 형태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경기장, 카드 테이블, 마법의 동그라미, 사원, 무대, 스크린, 테니스 코트, 법정 등은 그 형태와 기능에 있어서 모두 놀이터이다. 다시 말해 금지되어 격리된 장소, 특정한 규칙이 지배하는 울타리 쳐진 신성한 장소이다. 이런 놀이터는 일상 생활의 세계 속에 자리 잡은 일시적 세계이고, 별도로 정해진 행위의 실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공간이다. 47.

 

놀이는 불확실성과 우연성

 

긴장의 요소는 놀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긴장은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의미한다. 모든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은 놀이가 벌어지는 장소와 시간에서 무엇이 통용되는지 결정한다. 게임의 규칙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고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49.

 

 

의례는 드로메논

 

 

의례는 드로메논(dromenon)이라고 하는데, 행동된 어떤 것, 하나의 행동 혹은 행동을 의미한다. 독일어 spielmann은 뮤지션(음악하는 사람)의 함의를 갖는다는 사실은 악기의 연주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는다. 특별한 언어적 경우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음악을 놀이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105.

음악 만들기는 처음서부터 놀이 그 자체의 형태적 특징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 행위는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제한 아래 시작되고 끝나며, 반복 가능하며, 질서.리듬.교대로 이루어지며, 관중(과 뮤지션)을 황홀하게 만들어 일상 생활을 벗어나 기쁨과 평온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 이 때문에 슬픈 음악도 숭고한 기쁨을 자아낸다. 달리 말해서 음악은 사람을 매혹하고 황홀하게 한다. 105.

 

 

문화는 아주 태초부터 놀이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놀이가 곧 문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태초의 단계에 문화는 놀이의 특성을 갖고 있었고 놀이의 형태와 분위기에 따라 발전했다. 놀이와 문화의 쌍둥이 조합에서 놀이가 먼저이다. 112. 놀이는 의례에 뿌리를 박고 있었고, 리듬, 조화, 변화, 교대, 대조, 클라이맥스 등을 바라는 인간의 생래적 요구가 충분히 개화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문화를 생산했다. 161.

 

음악과 놀이

 

그리스어의 무시케(mousiche)라는 단어는 우리의 음악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갖고 있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신들이 슬픔을 안고 태어난 인간을 동정하여 그들이 고민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도록 추수감사 축제를 정하고 뮤즈의 수장인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보내 인간의 동료로서 어울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축제 때의 신성한 사교로 인해 인간들 사이의 질서가 회복되었다.318.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의 본질은 정의하기 쉽지 않고, 또 우리가 음악의 지식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이득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놀이와 오락을 위한 음악은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그 자체로 중요하지도 진지하지도 않지만 즐거움을 가져와 근심을 없애주는 효과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많으ㄴ 사람들이 음악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고 또 이 세 가지 음악, 술, 수면에 춤을 추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음악이 체육처럼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고 특정한 정신을 함양하며 적절한 방식으로 사물을 즐기게 해주므로 인간을 미덕으로 이끈다고 할 수 있을까?320. 음악을 고상한 놀이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중간쯤에 위치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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